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AI 도움을 받을 의향도 있었는데 그렇게 ‘잘’ 쓰려고 하다보면 아예 시작을 못할 것 같다.
직장 하부에 있던 알 수 없는 무언가는 암이었다. 전체 암의 0.3% 내외로 발병하는 희귀암이었다. 내 담당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지금까지 나와 같은 병명의 환자를 만난 건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크기는 2*4로 작지도, 그렇다고 엄청 크지도 않았다. 2기였다.
나는 암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글로 써서 눈으로 읽게 되는 것도 싫다. 내 병명을 한번은 언급을 해야 하니 적는다. 그냥 ‘그것’,’무엇’ 이 정도로만 표현하고 싶다. 또 항암이라는 말을 언급하기도 싫기 때문에 ‘그 약’ 정도로만 표현하려고 한다. ‘그것’ 이라는 단어는 글쎄. ( 이 부분에서 한참 생각해야했다. 싫은 이유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 아직 마음이 정리가 안됐다.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오늘은 그렇다.
생각보다 많이 고생했다. 꼭 ‘그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치료를 위해, 완치를 위해 달려가는 과정이 여자라서 더 힘겨웠다. 여자라서 치료 시작 전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이미 통증으로 일상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원인이 ‘그것’ 이라고 진단이 되었을 때 오히려 통증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다른 걸 준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혀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검진부터 마지막 치료까지 내내 함께 해주었던 남편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방사선 교수님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과정을 듣는 순간에는 내 곁에 없었다. 치료 과정 설명을 듣는 동안 애써 침착한 척을 했다. 피곤한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어마어마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나를 지켜내는 방어막이었다.
진료실을 나설 때 이런 종류의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한 순간에 이 대학병원 수많은 환자들 중에서 나도 중증환자로 속해버린 이상한 소속감,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 바로 눈 앞의 환자들, 건강을 자신한 입방정 같았던 말들, 가족들 얼굴, 이 와중에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하는 이성, 그리고 미친 듯이 밀려오는 슬픔..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당혹스러움, 혼란스러움. 복도를 어떻게 걸어갔는지, 어디로 갔었는지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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