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야했던 준비는 시험관 시술이었다.
방사선을 쏘게 될 범위에 골반 전체가 포함되어 가임력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산부인과 교수님들은 내 케이스가 흔하지 않으니 새로운 수술을 도전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보통 산부인과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장기를 들어내다보니 이 수술을 할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내 경우는 최대한 살려서 최소한의 피해를 유도해야 하다보니 무려 자궁을 명치 바로 밑까지 끌어 올려서 고정해두는 수술이었다.
한 교수님이 자신이 그 수술을 집도해보겠다며 우리 부부의 의사를 물어왔다. 국내 사례가 0, 내가 하면 뉴스에 날 일이었다. 부작용이 뭔지 아무도 모르는 수술과정에 대해 아주 심플한 설명을 들었다. 그냥 자궁을 잡고 있는 근육을 자르고 명치 부근까지 올린 다음 장기유착을 유도해서 붙게끔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치료가 모두 끝나면 다시 떼어내서 원위치 시키면 가임력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챗지피티한테 물어보니 인도인가 어딘가에 성공사례 1건이 있다고 했다. 수술만 성공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 수술의 목적은 가임력 보존이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까지 해내야만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사례가 1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너무 너무 심난했다. 내가 ‘그 것’에 걸렸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정말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심장이 계속 두근거려댔다. 자궁을 다치지 않게만 할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수술 과정을 들으니 이건 뭐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부채감만 줬다.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 낫고 나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지 않았다는 후회가 들면 어떡하지.
남편은 단호하게 이 수술은 하면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도 통증 때문에 힘든데 어떻게 그 긴 과정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난소는 방사선 치료가 아니어도 ‘ 그 약’ 때문에 지킬 수 없으니 시험관도 해야 하는데 , 그럼 시험관 보름, 수술 회복에 한 달, 그 뒤 3개월간 치료, 치료 종료 후 또 원상 복구 수술. 내 몸이 못 버틸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양가 부모님께도 말씀드렸더니 단호하게 안된다 하셨다. 나는 조금 더 고민을 했다. 자궁을 살릴 방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었는데 라는 애매한 스탠스를 취할지 말지는 당시 내 결정과 마음 정리에 달려 있었다.
나에게 이런 불행이 왔구나. 이건 불행이 맞다.
핸드폰 알고리즘이 나를 시험관 시술로 이끌었다. 시험관 시술을 여러차례 해서 힘들다는 영상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도 여러 번 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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